[ JMS / 정명석 목사의 설교 ] 실천한 만큼 차원을 높인다 성전 차원을 높였으면, 인구름이 차고 넘치게 하여 생명 차원도 높여라 / 요한계시록 2장 17절 , 요한계시록 22장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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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요한계시록 2장 1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요한계시록 22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사람은 그냥 그 차원에 머물러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지루하고, 곤고하고, 희망이 없고, 만족이 없습니다.

<신앙>도 그러합니다.
<완전하고 안정된 단계>까지 올라야 합니다.
<하나님도, 자신도 만족하는 단계>까지 올라야 합니다.

그러나 <차원>은 그냥 올라가지지 않습니다.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며 크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가령, 마른 사람이 체중을 늘리고 싶다 합시다.
자기 체중이 마음만 먹고 생각만 한다고 그냥 올라갑니까?

건강하게 먹고 운동하면서,
오랫동안 살을 찌우고 근육 양을 늘려야 합니다.

차원을 높일 때도 그러합니다.
거기에 해당되는 것을 배우고 깨닫고 오랫동안 실천해야
차원이 올라가게 됩니다.

하루를 살아도
저마다 실천할 것들을 실천하면서 차원 높여 살면,
<생각하는 것>도 <얻는 것>도 달라집니다.

모두 <성삼위께서 명하시고 감동 주신 것들>을 계속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면서
개인의 차원, 실천의 차원, 신앙의 차원을 높여 다음 단계로 가
다음 차원의 것을 얻길 축복합니다.

[ JMS/ 정명석 목사의 2017년 3월 19일 주일말씀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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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MS / 정명석 목사의 설교 ] 자기 취향 / 마태복음 25장 14-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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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마태복음 25장 14-15절
『(천국은 마치)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취향>은 ‘자기 체질, 자기 생각’대로 됩니다.
<자기 취향>대로 옷을 사고, 음식을 먹고, 환경을 만들어서 살지요?
모두 ‘자기 체질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뇌 차원대로’
<취향>이 결정되어 그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개성과 취향대로 하는 자유 의지’를 주시고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취향>은 ‘자기 체질’대로 생깁니다.
<취향>도 ‘자기 선택’이며
<그에 따른 책임>도 ‘자기’가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취향>대로 살다 보면 보장이 없습니다.
<자기 취향>은 불안정하여 믿을 수가 없습니다.
<생각>과 <실체>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생 마음은 변화무쌍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혹은 수백 번씩 마음이 잘 변합니다.
고로 자기도 <자기>를 믿을 수가 없고,
<자기 생각>도 믿을 수가 없어 불안정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일체 된 취향>만이
믿을 수 있고, 후회하지 않고,
육신 일생 동안 취향 만족이고, 영 영원까지 취향 만족입니다.
또한 갈수록 이상세계를 이루고,
차원을 높일수록 더 좋은 취향을 선택하게 되고,
그로 인해 만족하게 됩니다.

<취향>은 ‘자기 생각의 차원’대로 결정됩니다.
그대로 두면, 불안하고 믿을 수가 없으니
‘주’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더 열심을 내고 부지런하게 행하면
<생각의 차원>도 높아지고, 그에 따라 <취향>도 더 차원 높게 바뀝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취향으로 만드는 것>은
그만큼 수고와 노력과 몸부림이 필요하지만,
늦기 전에‘하나님의 취향’대로 자기를 한없이 만들어 보기 바랍니다.

 

[ JMS / 정명석 목사의 2016년 11월 13일 주일말씀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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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정명석 목사의 설교] – 실체 역사다. 실감 있게 해라. / 이사야 11장 9절 , 이사야 30장 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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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MS / 정명석 목사의 설교 ]

실체 역사다. 실감 있게 해라.


이사야 11장 9절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30장 26절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사람은 직접 보고, 직접 듣고, 직접 만져 봐야

<실체>를 실감 나게 느낍니다.
그러나 <상징과 비유>는
‘실체의 증거물’, ‘실체의 그림자’에 불과하여
느낌도 만족도도 100%가 안 되고, 실감도 나지 않습니다.

 

예수님 때도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실체>가 없으니,
각종으로 <비유>를 들면서 <실체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듣는 자들은 느낌과 실감과 감동을 약하게 받았고,
이에 증거자들은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고로 <성령>께서 ‘증거자들이 증거 하는 터전 위’에
더욱 증거하고 감동시켜 깨닫게 하셨습니다.

 

실물보다 수백 배 작은 <사진>을 보는 것과

<실물>을 보는 것은 정말 다릅니다.

<사진>은 만져 봐도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사진>은 다만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지,

<실체>와는 달리 ‘현실감’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사진>으로 보다가
사진보다 수백 배 큰 <실체>를 보면 ‘거인’을 본 것 같습니다.
고로 ‘생각’도 달라지고 ‘느낌’도 달라집니다.

 

<말씀>도 그러합니다.
<말씀>도 ‘실체 주, 실체 성삼위,

실체 역사’를 증거 하는 ‘증거물’입니다.

<말씀>을 듣고 생각만 하면 실체적인 감이 없으니

<말씀>이 실감 나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실제로 행하여

<실체>로 만들어야 수백 배 실감 나게 ‘큰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도 <실체>로 살아 있으니 얼마나 귀하고 좋습니까?
그러나 <실체>가 살아 있어도 행하지 않으면

<실체>가 없는 것과 같아서 느낌도 감동도 실감도 약합니다.
이제, 자신이 <실체>로 살아 있음을 절실히 깨닫고

<실체>를 가지고 어서 주와 함께 행하기를 축복합니다!

 

[ JMS 정명석 목사의 2016년4월 24일 주일말씀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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